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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H Mar 16. 2020

코로나와 법정스님

 코로나의 구렁텅이에서 나를 건지신 법정 스님

코로나로 은근슬쩍 무기력이 온다.

손품을 팔아 온라인 헌책방에서 법정 스님의 절판된 수필집을 12권 구입했다. 이 책을 택배로 받아 한 권 한 권 깨끗이 닦아 서재에 꽂으면서 생각한다.

나의 흙탕 마음을 던져 넣을 아궁이 불 !







얼마 전에는 "법정스님의 의자"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오랜만에 가슴 한가운데가 뜨거워졌다.

그가 살았던 길목마다 이야기하던 "맑고 향기롭게"라는 말이 삶으로 확인되는 시간이었다.

사람은 가버렸으나 그의 향기는 너무도 선명해 질감이 느껴질 정도다.

내 마음 언저리에 살포시 날아와 위로며, 가르침이며, 때로는 나의 종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걸어오는 이.

법정스님이다.


몇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의 마음이 너무도 깔아져 온갖 우울의 구렁텅이를 헤매던 어느 날,

우연히 읽게 된 해인 수녀님과 법정 스님의 교환 편지.

그 속에서 "주님을 말하던 스님"을 만나고야 말았다. (나는 크리스천이다)

그 글을 읽은 후로 줄곳 스님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중이다.

왈칵 울지 않을 수 없었던 글.

나의 슬픔이 엄청난 사소함으로 가벼워졌던 경험.

해인 수녀님뿐 아니라 나의 속뜰도 다정하게 알아봐 주시는 스님의 글을 읽고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순식간에 뛰쳐나올 수 있었다.





법정스님과 이해인 수녀님의 편지


법정 스님께


스님

스님,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립니다.

비 오는 날은 가벼운 을 입고 소설을 읽고 싶으시다던 스님.

꼿꼿이 앉아 읽지 말고 누워서 먼 산을 바라보며

두런두런 소리 내어 읽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하시던 스님.

가끔 삶이 지루하거나 무기력해지면 밭에 나가 흙을 만지고 흙냄새를 맡아보라고 스님은 자주 말씀하셨지요.


며칠 전엔 스님의 책을 읽다기 문득 생각이 나

오래 묵혀 둔 스님의 편지들을 읽어보니 하나같이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닮은 스님의 수필처럼 향기로운 빛과 여운을 남기는 것들이었습니다.


언젠가 제가 감당하기 힘든 일로 괴로워할 때

회색 줄무늬의 정갈한 한지에 정성껏 써보네 주신 글은 불교의 스님이면서도 어찌나 가톨릭적인 용어로 씌어 있는지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년 전

저와 함께 가르멜 수녀원에 가서 강의를 하셨을 때도 눈감고 들으면 그대로 '가톨릭 수사님의 말씀'이라고 곳 수녀들의 표현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왠지 제 자신에 대한 실망에 깊어져서 우울해 있는 요즘의 제게 스님의 이 글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와 잔잔한 우침과 기쁨을 줍니다.


어느 해 여름,

노란 달맞이 꽃이 바람 속에 솨아솨아 소리를 내며 피어나는 모습을 스님과 함께 지켜보던 불일암의 그 고요한 뜰을 그리워하며 무척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이젠 주소도 모르는 강원도 산골짜기로 들어가신 데다가 난해한 흘림체인 제 글씨를 못마땅해하시고 나무라실까 지레 걱정도 되어서 아예 접어두고 지냈지요.


스님, 언젠가 또 광안리에 오시어 이곳 여러 자매들과 스님의 표현대로 '현품 대조'도 하시고,

스님께서 펼치시는 '맑고 향기롭게'의 청정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이곳은 마다가 가까우니 스님께서 좋아하시는 물미역도 많이 드릴 테니까요.






이해인 수녀님께


수녀님, 광안리 바닷가의 그 모래톱이

내 기억의 바다에 조촐히 자리 잡았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재난들로 속상해하던

수녀님의 그늘진 속뜰이 떠오릅니다.

사람의, 더구나 수도자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만 한다면 자기도취에 빠지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어떤 역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보다 높은 뜻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 힘든 일들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주님은 항시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됩니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고 그럴수록 더욱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기도드리시기 바랍니다.


신의 조영 안에서 볼 때 모든 일은 사람을 보다 알차게 형성시켜 주기 위한 배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런 뜻을 귓등으로 듣고 말아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수녀님, 예수님이 당한 수난에 비한다면

오늘 우리들이 겪는 일은 조그만 모래일에 미칠 수 있을 겁입니다. 그러기에 옛 성인들은 오늘 우리에게 큰 위로요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분 안에서 위로와 희망을 누리실 줄 믿습니다.


이번 길에 수녀원에서 하루 쉬면서 아침 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던 일을 무엇보다 뜻깊게 생각합니다. 그 동네의 질서와 고요가 내 속뜰에까지 울려왔습니다. 수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산에는 해 질 녘에 달맞이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참으로 겸손한 꽃입니다. 갓 피어난 꽃 앞에서 서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심기일전하여 날이면 날마다 새날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그곳 광안리 자매들의 청안을 빕니다.








"법정스님의 의자"라는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불가 수행 중 책을 읽고 싶어 못 견디겠더란다. 저잣거리에서 구입한 한 권의 주홍글씨를 품고 절로 돌아온 스님은 아니나 다를까 큰 스님께 혼쭐이 나고 아궁이 불 속에 그 책을 던져버리시는데...

안 되는 줄 알면서 정말이지 하고 싶은 욕망이 함께 뒤섞인다는 것, 없애야 하는 마음인 줄 알면서 불쑥 이미 출현하고 마는 마음과의 대면, 불타는 아궁이 속 그가 바라본 것은 책이라기보다 자신의 마음이었을까...

쓸쓸히 앉아 욕망도 태우고 집착도 태워버렸을 아궁이 불 속.

다큐멘터리 속 재연된 젊은 법정 스님이 애잔하게 자꾸 떠오른다.







사십몇 년 만에 처음으로 생경한 경험을 주는 코로나 19를 겪고 있다. 나의 사십몇 년이 문제가 아니라 모든 세계가 코로나 19로 혼비백산이다.


내게 코로나는 책방을 한 달째 문 닫게 했고 아이들의 개학을 3주 미루도록 했으며 더 미룰 것을 예고하고 있다. 자발적 자가 격리 한 달이 되어가니 슬슬 답답함이 치밀어 오르고, 책방과 함께 빡빡하게 소화해 내던 3년 반 자랑스럽던 나의 루틴은 흐지부지 되고 있다.


'전화위복이라고 다시 못 올 기회이니 안식월이라 생각하자. 언제 24시간 한 달을 이렇게 온종일 아이들과 붙어 지낼 기회가 있겠어. 나는 또 언제 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내보겠어... 하고 싶은 것도 좀 하고 적당히 게으름도 좀 피워가며 이 날들을 즐겨...' 하다가도 다음날이면 땅바닥에 엎어진 마음을 발견한다.


삼시 세끼 밥반찬을 걱정하고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 나는 밥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고

아이들의 발산되지 못한 에너지는 축적에 축적을 더 해 소파가 주저앉을 판이다. 이 시국에 아프지 않고 잘 놀아주니 참 고맙다가도, 아이들의 고주파 목소리가 쉴 새 없이 이 벽 저 벽을 치며 울릴 때는 귀를 틀어막고 중얼거린다. 한 시간만 조용히 있고 싶다고...


나의 시간은 늘어질 대로 늘어져 탄력 없는 고무줄이 되었고 게으르게 피폐해진 내 모습이 발견되면 또 이글이글 못마땅함이 끓어오른다.


꿈틀대던 나의 다음 계획, 그 모든 것을 주저앉혀버린 코로나.







나는 다시 그때의 편지글과 영화 "법정스님의 의자"를 생각한다. 그리고 택배 상자에서 갓 풀어헤친 스님의 글들을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간다.


해인 수녀님께 한 말이지만 내게도 했던 말

불타는 아궁이에 집착과 어지러운 마음을 던져 넣고 뒤적뒤적 아궁이를 응시하시던 그 영상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만 한다면

자기도취에 빠지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어떤 역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보다 높은 뜻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 힘든 일들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주님은 항시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됩니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고 그럴수록 더욱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기도드리시기 바랍니다.


신의 조영 안에서 볼 때

모든 일은 사람을 보다 알차게 형성시켜 주기 위한 배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런 뜻을 귓등으로 듣고 말아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그 몇 해 전에도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나를 건지시더니 코로나의 구렁텅이에서도 나를 건지신다.


매일 실망하고 매일 좌절하고 매일 분노하는 나의 완전하지 못한 일상에도 "감사"가 비집고 들어온다.



법정스님의 낡은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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